원인별로 살펴본 섹스리스 커플의 극.복.기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는 고통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더구나 사랑하는 사람들이 서로의 애정을 확인하는 일임에야. 최근 들어 사회적 문제로까지 대두되는 섹스리스는 더 이상 숨기거나 부끄러워할 일이 아니라, 당당히 치료받고 해결점을 찾아가야 하는 두 사람만의 숙제다.
‘섹스는 신이 인간에게 내린 최고의 선물이다’라는 말이 있다. 발정기를 통해 종족 보존의 본능에만 충실한 짐승들에 비해, 인간은 시도 때도 없이 잠자리를 갖는다. 본능이 아닌 쾌락 때문이다. 너무 과도한 쾌락에의 집착도 문제겠지만 사랑하는 부부나 연인 등의 경우, 섹스로 얻는 쾌락은 두 사람의 애정과 유대감을 더욱 공고하게 해주는 최상의 방법이기도 하다. 실제로 섹스는 쾌락 제공의 역할뿐만 아니라 노화 방지, 면역력 강화 및 유방암 회복 효과 증가, 옥시토신 증가로 인한 유대감 강화, 심혈관을 건강하게 만드는 운동 효과, 에스트로겐 증가로 의한 피부미용 등 셀 수 없을 정도의 혜택을 가져다주는 것으로 이미 의학적으로도 증명되었다. 이쯤 되면 가히 ‘신의 선물’이란 말에 모자람이 없는 듯하다.
대화를 나누고 애무를 하며 섹스를 즐기는 정상적인 커플들의 경우, 이러한 혜택 아닌 혜택을 얻는 것은 자명한 일. 하지만 소위 ‘섹스리스’로 명명된 이들에겐 언감생심 남의 이야기일 뿐이다. 사실 섹스리스는 정확한 의학적·학문적 용어는 아니다. 하지만 성의학 전문가들은 대개 3~6개월가량의 기간 동안 관계를 맺지 못했을 때 섹스리스로 분류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물론 두 사람 모두 섹스에 대한 정상적인 욕구가 있을 때 통용되는 말이다.
신체와 정신이 건강한 사람이야 ‘왜 섹스를 하지 못하느냐’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우리 주변에서 섹스리스 커플을 찾아보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특히 맞벌이 부부가 늘어나면서 DINS(Double Income No Sex)라는 말이 생겨날 정도로 섹스리스는 심각한 사회적 병리현상으로 대두되고 있는 것이다. 문제가 있으면 해결하고 원인이 있으면 찾아야만 하는 법. 관계 없는 사랑에 고통스러워하고 있다면 과감히 해결점을 찾아나가는 결단이 필요하다.
Case 1 ‘만족시켜야 한다’는 과도한 의무감이 발기부전으로
섹스리스의 원인은 한마디로 정의하기가 매우 어렵다. 신체적·정신적인 것을 비롯해 각 개인마다, 커플마다 수없이 다른 원인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크게 성기능장애로 구분되는 ‘신체적 측면’과 성적 불일치, 생활환경, 성에 대한 무지 등 ‘부부 관계적 측면’으로 나누어 구분하는 경향이 크다.
1년 전 결혼한 A씨와 B씨. 결혼 전 A씨는 대기업에 근무하며 능력을 인정받는 남자였고, B씨 또한 명망 있는 가정에서 훌륭한 가정교육을 받고 자란 현모양처감이었다. B씨는 미모도 출중해 그녀를 아내로 맞은 A씨는 친구들의 부러움을 한몸에 받았을 정도. 하지만 결혼 후 1년이 지날 때까지 두 사람은 심각한 섹스리스 부부였다. 남편인 A씨가 어찌된 영문인지 발기불능 증세를 보였기 때문이다. 성의학 클리닉을 찾은 두 사람은 신체적으로는 아무런 이상이 없다는 진단을 받았다.
A씨는 “수치스러운 이야기지만, 자위를 할 때는 발기에 아무런 이상이 없다”는 고백까지 했다. B씨는 잠자리를 회피하는 남편을 보며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 성에 문제가 있는 남자에게 속아서 결혼했다’는 생각까지 하기에 이르렀고, 두 사람의 관계는 더욱 멀어져만 갔다. 그렇다면 남편의 발기불능의 원인은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얼마간의 면담 결과 의사는 두 사람 모두 결혼 전까지 성교 경험이 한번도 없었다는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경험이 없다고 모두 실패하는 것은 아니지만, A씨는 첫날밤 극도의 긴장감을 가졌다고 고백했다. 완벽한 모습을 잠자리에서도 보여주기를 원했지만 너무 긴장한 탓에 발기가 이루어지지 않았고, 그후로는 그때의 경험에 의한 부담감이 이어져 부인 앞에서는 고개 숙인 남자가 되었던 것이다. 두 사람의 마음속에 담아두었던 말들을 솔직히 꺼내놓음으로써 서로에 대해 이해할 수 있었고, 결국은 수차례의 심리치료 끝에 현재는 정상적인 성생활을 누리고 있다.
Case 2 평소 복용하던 혈압약이 발기부전 원인이었다
위의 예는 병에 대한 잘못된 이해가 섹스리스로 이어진 전형적인 경우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성기능장애는 결코 성기장애가 아니라는 것이다. 성기능, 말 그대로 성생활을 하는 데 있어 정상적으로 작동해야 할 기능들이 고장을 일으켰을 때를 바로 성기능장애라고 일컫는 것. 성기능장애의 원인은 혈관이나 신경 이상, 신체적 결함 등 원인 또한 다양하다. 다음은 신체적인 결함이 섹스리스로 이어진 전형적이 예다.
고혈압 환자인 C씨는 평소 혈압 관리를 위해 혈압약을 꾸준히 복용해왔다. 하지만 어느 때부터인가 성욕이 감소하고 부인과의 잠자리가 멀어지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섹스리스로 이어지고 말았다. 건강한 편이었던 부인은 C씨의 이런 달라진 모습에 심한 절망감을 느꼈지만, 애써 참으며 부부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형편이었다.
결국 부인과 함께 병원을 찾은 C씨는 발기부전의 원인이 고혈압에 있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고혈압이 동맥경화를 일으키고 이로 인한 혈관의 이상이 발기력을 떨어뜨렸다는 것. 여기까지는 그런대로 이해할 수 있었지만 다음에 이어진 의사의 설명에 부부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혈압약에 든 성분이 발기력을 떨어뜨리는 주범이라는 말. C씨는 성기능장애를 불러오지 않는 새로운 약을 처방받았고, 몇 달이 흐른 후 만족스런 잠자리를 가질 수 있었다.
Case 3 ‘성교는 나쁜 것’ 심리적 원인이 성교통 부른다
이상과 같은 성기능장애는 전문가와의 심리상담이나 의사의 진단으로 원인을 찾아내면 얼마든지 치료가 가능한 경우다. 성기능장애는 남성뿐만 아니라 여성들에게도 흔히 일어날 수 있다. 여성들이 겪는 성기능장애의 대표적인 케이스가 바로 ‘성욕저하증’과 ‘질경련’이다. 성욕저하증은 어떤 이유에서든 성욕이 떨어져 관계를 맺고자 하는 의지 또한 사라지는 경우. 보수적인 집안환경, 어릴 적 당했던 성추행, 부모의 관계가 원만하지 않았던 환경 등 원인은 다양하다.
여성들의 경우 피임약이 성욕 저하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피임약의 주성분은 호르몬. 외부에서 유입된 호르몬이 본래 몸이 갖고 있던 호르몬 체계를 교란시키게 되는데, 성호르몬은 성기 조직과도 밀접한 관련을 갖고 있다. 따라서 성기 조직에 염증이 생길 수도 있고, 이것이 성교통으로 이어져 자연히 성욕이 저하되는 것이다.
여성들이 겪는 성기능장애의 두 번째 케이스는 ‘질경련’이다. 성교통으로도 이해되는 질경련은 신혼 때 유병률이 1%에 달한다는 보고도 있을 만큼 심각한 수준이다. 신혼 초의 질경련의 이유는 대부분 삽입에 대한 공포 때문이다. 무서우면 긴장하고 움츠러드는 것은 질 근육도 마찬가지. 긴장한 근육에 억지로 삽입을 시도하다 보면 쾌감에 앞서 고통이 찾아오고 이는 곧 섹스리스로 이어지기 쉽다.
집안에서나 학교에서나 비교적 보수적인 환경에서 자란 D씨. 조신하고 얌전한 여성을 좋아하던 남자 E씨에게 아내 D씨는 완벽한 신붓감이었다. 하지만 너무 보수적인 가풍에서 자란 D씨는 ‘성행위는 건전하지 못한 것’이라는 인식을 어려서부터 쌓아왔고, 잠자리에서도 다가오는 남편을 향해 엉덩이를 빼는 일이 잦아졌다.
억지로 삽입을 시도하려고 한 남편도 질구가 열리지 않아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었고, D씨는 극도의 공포감과 함께 고통까지 맛봐야 하는 악순환이 이어졌다. 클리닉을 찾은 부부는 우선 자신만의 도덕적 룰과 순결지상주의를 깨뜨리는 심리치료와 약물치료를 병행해 받았고, 작은 사이즈의 보형물부터 실제 크기의 보형물까지 삽입해보는 단계적 훈련을 통해 삽입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전문가들은 질경련의 경우 적절한 치료법만 찾으면 거의 100% 완치가 가능하다고 조언한다.
Case 4 아내의 냄새 때문에 오럴섹스 거부했다
결혼 4년차의 남편 F씨와 부인 G씨. 두 사람이 처음 클리닉을 찾은 이유는 서로의 성행위 패턴에 대한 불만족 때문이었다. 오럴섹스를 좋아하는 남편을 위해 아내는 성심성의껏 응해주었다. 하지만 남편이 해주는 오럴섹스를 기대했던 아내는 번번이 거부당하기 일쑤였고, 결국에는 심한 모멸감까지 느끼게 되었다.
‘남편이 오럴섹스를 해주었다’는 친구들의 이야기는 그녀의 신경을 더욱 날카롭게 만들기도 했다. 하지만 상담 과정에서 아내는 그동안 몰랐던 남편의 이야기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오럴섹스를 해주고 싶어도 냄새가 나서 도저히 할 수 없었다’는 것. 아내가 마음의 상처를 입을까 염려했던 남편은 솔직히 말하는 대신 오럴섹스를 거부했고, 점점 누적된 불만이 결국 잠자리 자체를 뜸하게 만들게 된 것이다.
진단 결과 남편이 그토록 싫어했던 아내의 냄새는 질 입구에 생긴 염증 때문인 것으로 밝혀졌다. 따뜻하고 습기가 많은 여성의 질은 원래 곰팡이균이 생기기 쉬운 환경이다. G씨가 감염된 ‘캔디다증(질염)’은 성병은 아니지만 질 입구에 염증을 유발하는, 즉 대표적인 ‘전정염’이었다. 전정염은 전체 성교통의 45%를 차지할 만큼 중요한 질환이다.
Case 5 출산 후 근육 손상으로 만족감을 잃어버렸다
결혼 2년차의 주부 H씨. 신혼 때부터 출산 전까지 남편과의 사이에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아이를 낳고 난 이후부터 이해하기 힘들 정도로 성욕이 감퇴되는 것을 느꼈고, 결국은 섹스리스 부부가 되고 말았다. 진단 결과 H씨의 원인은 출산시 행했던 회음부 절개가 문제였다. 뼈가 없이 근육으로만 구성된 여성의 질과 항문은 그만큼 예민한 조직. 회음부 절개로 질 근육이 손상되면서 적절한 밀착도가 사라졌고, 자신은 물론 남편 또한 예전과 같은 만족감을 얻을 수 없게 되었다. H씨는 이후 신경과 근육의 재활치료에 나섰고 정상 조직으로 돌아가기 위한 약물치료도 병행했다. 경우에 따라선 혈관의 활동성을 끌어올리는 치료법도 곁들였다. H씨 커플은 현재 정상적이고 만족스러운 성관계를 맺고 있다.
H씨 같은 경우 특히 유념해야 할 것이 별다른 고민 없이 넘어가기 쉽다는 것이다. 나이가 들고 아이까지 낳다 보니 부부가 아닌 친구처럼 지내고, 또 그러다 보니 서로를 이성으로 보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까지 이르게 되는 것. 하지만 정상적인 성행위가 가능하고, 섹스에 대한 욕망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원만한 성행위가 어렵다면 반드시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이 좋다.
Case 6 나이 먹었다고 방치하는 것은 직무유기
올해 50대 초반의 남편 I씨와 40대 후반의 아내 J씨. 두 사람이 섹스리스로 지낸 지도 벌써 5년째다. 나이가 들면서 발기력이 떨어지고 폐경이 찾아오면서 분비능력 등이 떨어지는 것은 지극히 정상적인 상황. 심적으로 서로 위축된 두 사람은 점점 잠자리를 갖지 않게 됐다. 하지만 문제는 남편인 I씨. 아내에게서는 멈췄던 성욕이 젊고 예쁜 다른 여자에게만 가면 용솟음쳤던 것이다. ‘아내를 옛날만큼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성욕이 사라졌다고 믿던 남편. 하지만 병원을 찾은 결과 I씨는 갱년기 증상으로 인해 성기능이 떨어졌다는 진단을 들어야 했다. 아내 외의 젊은 여성들은 떨어진 성기능을 돌려줄 만큼 강렬한 자극이 되었기 때문에 자신의 성적 능력에 이상이 없다는 그릇된 확신을 가졌다는 설명이었다. 결국 남성호르몬 치료와 심리 치료를 병행한 남자는 이중생활을 정리하고 지금은 아내와 다시 사랑을 나누고 있다.
위의 예는 신체적인 문제점을 심리적인 원인으로 잘못 오해하는 전형적인 케이스다. 섹스리스 커플을 치료하는 의사들이 치료 과정 중 커플에게 제일 먼저 요구하는 것이 ‘같은 공간’에 있으라는 것이다. 하루 1시간이든 그 이상이든, 이야기를 하건 무심한 채 내버려두건 무조건 같은 공간에 있어야 한다. 바꿔 말하면 함께 있는 시간을 늘려준다는 뜻인데, 이는 곧 관계의 회복을 의미한다. 시간이 부족해 정서적 친밀감을 형성할 수 없다는 것이 ‘피곤함’보다 훨씬 큰 섹스리스의 원인. 함께 있는 시간이 많아질수록 적절한 스킨십이 이뤄지고, 그러다 보면 자연히 섹스리스를 벗어나는 길이 열리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