흘러간 나의 여인들
쿠알라 룸푸루에서 일어난 일 그리고 홍콩에서의 일등을 엮어 하나의 제목으로
글을 써왔는데 제목을 바꾸어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글을 쓰는 사람도
지루하고 읽는 사람도 지겹지 않겠나 하는 느낌이 있기 때문이었다. 사실은 할리마를
어떻게 처리하느냐가 어려운 문제였기에 피해 가려는 궁여지책이기도 함을 인정할 수
밖에 없기도 하다.
쿠칭은 말레지아국 사라와크주의 주도이다. 이제까지 빈투루라는 곳에서 일어난 일들을 가지고 글을 써왔는데 그 글들중에서 쿠칭에서 일어난 일들이 삽입되기도 하였슴을 관심있는 독자들은 알 것이다.
쿠칭이라는 이름이 매우 아름답지 않은가? 쿠알라 룸푸루라는 도시 이름 다음으로 알게된 도시의 이름이 쿠칭이었기 때문인지 그 이름이 주는 감상은 매우 특별했다. 한자로 어떻게 쓰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데, 이글을 쓴다고 새삼 어떤 한자를 쓰는지를 찾아 보기는 좀 그렇다. 아마 기억속에 있는데 떠오르지 않는 한자인 것 같다. 古靑이 아닌가 싶다. 인구가 몇명인지 하는 상세한 정보도 없다. 단지 기억에 남아 있는 것은 말레지아의 수도만큼이나 아름다운 지나 여인과 말레이 여인이 많다는 것이다.
빈투루 이야기에서 나오는 식당에서 만난 아름다운 지나 여인만큼이나 아름다운 여인을 쿠칭의 문구 가게에서 만났다. 문구 가게라고 해서 보통의 문방구를 파는 가게가 아니고 로트링이라고 하는 측량에 쓰이는 특별한 필기구를 파는 품격높게 꾸며 논 가게 였다.
측량용 필기구를 사달라는 요청을 받고 여기 저기 알아 보았지만 빈투루에는 없었다. 근데 그 측량용 필기구는 기성요청 자료를 만드는데 꼭 필요한 것이기에 일부러라도 쿠칭에 가서 사올수 밖에 없었다. 전화 번호를 안내하는 옐로우페이지에서 찾아낸 로트링 대리점은 쿠칭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비행장에서 내려 택씨를 타고 시내로 갔다. 시내라고 해봐야 약 2마일 정도의 두 갈래 길이 전부였다. 로트링 대리점은 상점이 즐비한 상가의 일층에 있었다. 옐로우 페이지에서 보았던 측량기사가 가지고 있는 필기구에 새겨 있는 로고가 그려진 간판이 매우 반가왔다.
'찾기가 쉽구먼. 참 간판이 이쁘네. 전 세계가 동일한 사이즈의 간판을 쓰나?'
이런 바보같은 생각을 하면서 상점의 문을 열었다. 문을 여니까 6평 정도의 가게인데 한 여인이 커다란 창문을 등지고 앉아서 나를 쳐다 보았다. 그 창문안에는 사무실이 있어 아마 사장이 근무하고 있는 것 같았다. 신기하게도 그 여인은 손님이 분명한 나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냥 보기만 했다.
"여기가 로트링 대리점 맞나요?"
아무 것도 묻지 않으니 내가 말할 수 밖에.
"그런데요."
"무엇때문에 왔는지 물어야 하는 것 아니요?"
"물건이 필요하면 일단 보세요."
한 마디로 성깔이 있는 여자 같았다. 근데 이뻤다. 쿠알라 룸푸루의 식당에서 본 그 아릿다운 지나여인 만큼이나 이뻤다. 일단 여자가 이쁘려면 피부가 깨끗해야 하는 것 아닌가? 그 여자와 이 여자는 정말 뽀얀 얼굴 피부를 가지고 있었다. 그 하얀 피부라니.... 그리고 눈과 코가 정말 규격에 맞았다. 얼굴은 조그맣고.... 앉아 있으니 그 다리는 보이지 않지만 날씬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일단 웃게 만들자. 그래야 역사가 만들어 지지 않을까?
"너무 물건이 많아 어느 것이 필요헌지 모르겠는데 도와 줄 수 없나요?"
"나도 모르는데요. 대게들 자신이 필요한 것을 잘 찾던데...."
"난 측량쟁이가 아닌데요?"
"측량쟁이가 뭐예요?"
"아니 측량쟁이도 몰라요? 그러면서 이런 물건을 팔아요?"
"우리 물건은 모두가 다 필요로 해요. 그 측량 뭐뭐 아니래도 팔데 많아요."
영 싸가지 였다. 얼굴은 전혀 아닌데 말은 영 싸가지였다. 한국 같으면 그냥 나갔을텐데 여기는 나가면 살 곳이 없다. 시골이 가진 단점이다. 머리를 굴려 본다.
어떻게해야 저 싸가지가 만만해질까? 역시 주인을 보아야한다. 개가 사나우면 주인에게 밖에 따질 곳이 없지 않겠는가?
"사실 난 빈투루에서 왔고 우리 현장은 로트링 필기구를 많이 사야 하는데 사장님과 추후 거래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싶습니다. 계신가요?"
정말 공손히 여쭈어 보았다. 초딩때도 말투때문에 담임에게 많이 깨졌었는데 이 정도면 신경을 무자게 쓴 것이었다.
"얼마나 살려는지 몰라도 사장님을 찾는 것은 좀 그러네요."
정말 뚜껑이 열리려고 하였다. 붉으락 푸르락 하고 있는데 점잖게 생긴 40대의 지나인이 여자가 앉아 있는 벽면에 달린 문에서 나왔다. 얼굴에 미소를 띄우고 반갑게 인사를 한다.
"안녕하세요? 찾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어, 사장이세요? (Are you the boss?) 이 아가씨는 별로 손님이 반갑지 않은 모냥인데 사장은 매우 반가와 하네요?"
"예, 사장입니다. 리차드 옙입니다. (지나인들은 리차드라고 발음하지 않는다. 리찯이라고 발음하고 발음 기호가 그리 읽으라고 되어 있는데 한국인과 일본인은 발음 기호를 따르지 않고 이상한 발음을 한다고 손가락질을 한다. 솔직히 난 그 차이를 모르겠다. 미국인이 알아 들으면 되는 것이 아닌가?) 사장과 사원의 차이가 거기에 있다고 항상 생각하고 있습니다. 원하시는 것은 찾으셨읍니까?"
"어디 있는지를 물으려고 했는데 참 까칠하더군요"
당시 한국에선 까칠하다는 표현을 사람의 성정을 나타내는 형용사로 사용하지는 않았다. 사물의 표면이 가진 성질을 표현하는 말이었는데 지금은 사람에게도 적용이 된다. 이런 표현에 대한 호불호는 없다. 차이가 있을 뿐이지.
"엘리스, 까칠했었어? 미남이신데 왜 그랬어?"
"어, 까칠 안 했는데. 평소 하던대로 했는데...."
"그럼 까칠한거지. 이분은 외국인이신데 동포와 같이 대하면 안돼지."
"외국인이세요?"
"나으 영어가 지나 영어로 들린겨?"
된장내가 팍팍 풍기게 영어를 해 버렸다.
"아까는 그렇게 안하시드만. 죄송합니다."
"아니 다행이네. 사장님, 이야기 좀 하실까요?"
여자,엘리스라고 불린 여자는 뻘쭘해가지고 찌그려졌다. 사장은 흔쾌히 자신의 방으로 나를 안내했다.
사장방에서 나는 지금 하고 있는 공사의 개요를 대충 추려서 들려 주고 앞으로 많은 물품을 살것 같으니 도와 주기 바란다는 말을 햇다. 사장은 입이 벌어져 다물 줄을 모르면서 다른 자재도 연락을 하면 챙기겠다며 엄청 지원할 것을 약속하였다.
'근데 저 아가씨는 여기 수준으로 봐서 이쁜거요?"
"그럼요. 그래서 좀 까칠해도 데리고 있는거지요. 집안 좋고 돈 많은 남자에게 곧 시집을 갑니다. 다른 직원을 뽑아야하니 머리가 아파요. 잘 해주었는데."
"시집가도 계속 사용하시지...."
"신랑네 가게에서 일을 한다네요."
"안됐네요. 다음에 올 직원도 이뻤으면 좋겠군요."
"결혼전인가요?"
"예, 아직 총각인데요?"
"알았습니다. 아주 이쁜 여자로 구해 놓겠습니다. 일단 오늘은 아까 이야기 하신 것만 준비해 드리면 돼지요?"
사장은 엘리스를 불러 주문한 물품을 포장하도록 했다. 마침 그녀가 허벅지를 보이는 치마를 입었기에 그 위를 궁금해 하면서 허벅지 감상을 했다. 너무 티나게 감상을 하니까 엘리스는 거북해 했다. 난 그녀의 포장을 돕는 척 하면서 그녀의 귀에 대고,
"Your thigh is very sexy."라고 속삭였다. 그녀는 매우 불쾌한 표정을 지으며 날 노려 보았다. 난 뭐가 잘못됐냐는 표정으로 그녀의 응시를 돌려 주었다. 물론 어깨를 치켜 올리며 두 손을 하늘을 향하는 서양식 제스츄어를 산뜻하게 해주었다. 그녀는 화난 표정을 숨기지 않은 채 사장이 거하는 방으로 거의 뛰둣이 들어갔지만 사장실에서는 아무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사장은 계속 이어질 당 현장의 주문으로 인하여 입을 닫았슴이 분명하였다.
이렇게 길을 닦은 로트링 회사와는 현장 측의 요청이 있을 때 마다 물품의 주문을 했고 쿠칭에서는 소포로 요청하는 품목을 보내 주기도 했고 내가 출장을 갈 경우에는 물품을 준비해 주기도 했다. 근데 그 어여쁜 판매원은 더 이상 근무를 하지 않았다. 사장의 얘기로는 그 동네의 가장 큰 부자집의 외동 아들에게 시집을 가는 쾌거를 이루었다고 했다. 그녀의 빈 자리를 채운 여성은 그녀 만큼이나 이쁜 여자였는데 선은 그녀보다 굵었다. 눈은 그녀보다 훨씬 컸고 날씬하기는 더 날씬했는데 그녀가 가졌던 청순미는 없었다.
"아니, 여기 있던 아가씨는 어디 갔나요?"
"아, 그 아가씨요? 시집 갔는데...."
"나에게 보고도 안하고 그 먼길을 갔다는 말인가요?"
"먼길 아닌데. 이 동네로 갔는데요."
"여자가 가는 가장 먼 길이 시집이라는 것을 모르나요? 아직 시집을 안가셨나?"
"갔다 왔는데요?"
"그러면 아실텐데, 왜 모르시나?"
"우린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데요? 다른 나라에서 오셨나 보네요."
"맞아요. 다른 나라지요. 사장님 계세요?"
"어디 가셨는데요."
"사장이 계셔야 얘기가 되겠네요. 잠시 기다릴께요. 괜찮지요?"
"마음대로 하세요. 근데 어디서 오셨지요?"
"빈투루에서 왔는데요."
"아, SJ 아니세요?"
"맞아요. 내가 SJ 인데요."
"사장님이 오실꺼라고 하시던데요. 일찍 오셨네. 두시간 정도 있어야 오신다고 알고 있었는데."
"앞 비행기를 탔지요. 근데 성함이...."
"린다예요. 린다 장 입니다."
"장은 남편의 성인가요?"
"돌아 오면서 성을 본가의 성으로 회복했어요."
"그냥 사시지 왜 돌아오셨나?"
"사람마다 사정이 있지요."
"내가 알 바는 아니지요."
이런 이야기를 하면서 린다의 얼굴을 자세히 뜯어 보니 얼굴은 정말 나무랄 데 없이 생겼는데 가장 매력적인 곳은 입술이었다. 입술 자체가 정말 키스를 한 번 했으면 하는 마음이 저절로 일어나는 육감적인 것이었다. 난 많은 여자를 보았지만 이 린다 만큼 입술이 육감적으로 생긴 여자는 후에 만나는 현대 전자의 대리외에는 없었다. 근데 키스의 맛은 그 모양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는 공식을 알려준 여자도 린다였다. 많은 지나 여인들은 이상하게 린다라는 이름을 선호한다. 린다라는 말은 스페인어로 이쁘다는 말인데 지나어로도 무슨 의미가 있는지 찾아 보지는 않았지만 쿠알라의 린다와 쿠칭의 린다가 벌써 독자들에게 인사를 드리지 않는가? 몇 안돼는 지나 여인중 린다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 둘이 아닌가? 물론 릴리라는 이름도 매우 흔한 이름이다.
이런 이쁜 입술을 가진 여인이 자주 가는 필기구 회사에 근무한다는 것이 나에게는 다른 기회를 주고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는 생각을 굳게 가지며 난 쿠칭에 갈 때마다 린다와의 관계를 개선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였다.
"어이, 끝나고 뭐해? 어차피 난 혼자 먹어야 하는데 같이 밥이나 먹지?"
쿠칭 출장이 있어서 가는 길이면 일이 없어도 로트링 대리점에 들러 린다에게 수작을 붙이곤 하는데 이런 말을 여러 번 했지만 한 번도 린다는 나와 밥을 먹어 본 적이 없었다.
"사람이 말이야 목석도 아니고 밥 한 번 같이 먹자는데 그리 인색할 것은 무에야? 밥 먹다 죽은 귀신 이듬해 태어났나?"
"밥을 못 먹을 형편 아니거든요. 그리고 집에 가서 아들과 같이 저녁을 먹어야 해요. 그러니까 이 이상 집적대지 말아요. 그러지 않아도 피곤한 인생이에요."
하루는 거의 짜증을 내는 나에게 그녀는 이렇게 말을 했다. 아들이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 날씬하게 빠진 몸매를 자랑하는 그녀에게 아들이 있다니. 청천 벽력이었다.
"아들이 있다고라? 실례지만 연세가?"
"스물 여섯이에요."
"그럼 애가 어리겠네."
"일곱살 인데요."
연속해서 놀라움의 강펀치를 날리는 그녀였다. 그럼 열 아홉 꽃다운 나이에 아이를 낳았다는 말이 아닌가?
"그렇게 일찍 애를? 결혼은 언제?"
"우리는 폼식스(고삼을 뜻하는 영연방의 학년)때 같은 반이었는데 그때 우리는 결혼을 했어요. 그리고 그 다음 해 그애를 낳았고 그리고 잘 살았는데...."
"혹 남편이 죽었나요?"
"아니요. 스튜와데스와 바람이 났는데 참을 수가 없어 이혼하자고 했지요."
"그럼 남편은 무엇을 하는데요?"
"스튜와드에요. 마스의."
마스는 Malaysian Airline System을 나타내는 말로 항공사 직원인 모양이었다. 얼굴을 본지 몇 달이 지나서 듣는 이 말은 나를 참담하게 하였다. 처녀인지 알고 수작을 부렸는데 이혼녀라고 한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나.
이 말을 주고 받은 후 쿠칭에 가도 그녀가 있는 가게를 되도록이면 들리지 않았다. 불쌍한 생각도 들고 애가 있다는 말이 나에게 큰 부담으로 작용했기 때문이었다. KL의 린다는 이혼녀이지만 애가 없지 않은가 말이다.
"때리링, 때리링"
정겨운 전화벨이 울렸고 마침 호가 없어서 내가 전화를 받았다.
"웨이, 쉔따이 시니 (여보세요, 현댑니다.)"
"워야오짱에스제이. 타자이마? (성진과 통화하고 싶어요. 계신가요?"
"워자이스 (제가 근데요?) 니스린다마? (린단가요?)"
"왜 요즘은 안와요? 별로 일이 없나 보지요?"
린다가 전화를 해 온 것이었다. 한 번도 전화를 한 적이 없었는데 너무 연락이 없으니까 궁금했던 것이리라.
"별로 갈 일이 없어서.... 가도 밥도 같이 못 먹는데 뭐하러 연락을 하나?"
"그럼 언제쯤 올 수 있나요? 사실 밥을 같이 먹으려 해도 쿠칭은 좁은 동네라 누구라도 볼 수 있기에 거절했는데...."
"일단 다음 주에 갈 일이 있어요. 그럼 그 때 들릴테니 그 때 이야기 해요."
하고 전화를 끊었다.
'나를 마음에 두고는 있었는데 주위 사람들에게 신경을 써야 한다는 말이구나. 어떻게 하지?'
돈을 받으러 일이 없어도 한 달에 한 번은 가야하는 쿠칭이기에 내가 피하지만 않으면 언제든 만날 수 있는 린다였다. 곧 기성을 받을 날이 되기에 다음 주에 간다고 이야기는 했지만 만날지 말지는 결정하기 어려웠다. 이 린다는 키가 162 센티 정도였지만 매우 날씬한 체형에 가슴이 커서 이쁜 얼굴과 잘 어울리는 섹시한 체형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니 그녀를 보고 싶은 마음도 있는 것은 사실이었다.
기성을 받으러 가기 전날 쿠칭의 린다에게 전화를 해서 도착 시간을 알려 주었더니 자신은 차가 없지만 친구가 차가 있으니 그녀와 함께 공항에 나오겠다고 했다.
여러 번 이야기 하지만 쿠칭까지의 항공기 시간은 한 시간이 걸린다. 이 시간안에 구름이 낀 날씨가 되면 프로펠라 비행기는 둥산과 하강을 되풀이하며 여자 승객을 죽였다 살렸다 하는 비행을 하는 것이었다. 나는 이 등산과 하강이 너무 짜릿하여 어쩔 줄을 모르게 좋아하는데 다른 사람들은 그러지 않는 것 같았다.
공항에 도착해서 트랩을 걸어내려와 아스팔트 위를 걸어 공항의 대합실을 거쳐 밖으로 나가니 린다가 왠 아이와 왱 여자와 함께 나에게 손을 흔들며 반긴다. 나는 정말 뻘쭘해서 린다에게 다가갔다.
"에스제이, 내 아들이야. 여기는 친구 그리고 차 주인. 이름은 에스더."
"그래. 반갑다. 글구 반갑습니다."
"하이 언클" 하고 그 꼬마가 인사했다.
"반갑습니다." 에스더의 인사였다.
에스더는 키가 매우 큰데 별로 들어간 데와 나간데의 구별이 없는 여자였다. 그 여자도 돌싱이었다. 우리는 쿠칭의 하나 있는 고급 호텔인 홀리데이 인으로 갔다. 그 호텔의 양식당이 매우 음식을 잘 해서 쿠칭에 갈 때마다 그곳에 묵으며 음식을 즐겼기에 마중나온 그들에게 양식을 대접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아인 매우 쾌활하여 차안에서의 대화를 이끌어 갔다. 지 아빠를 닮았는지 린다의 큰 눈은 그 아이의 얼굴에서는 보이지 않았다. 삽십분 정도 걸려서 우리는 호텔에 다다랐다. 에스더는 우리를 내려주고 갈려고 해서 나와 린다가 실갱이를 해서 그 여자를 잡았다. 그녀는 어색해히면서 차를 주차했다.
나는 쳌인을 먼저하고 내 방에 가방을 가져다 놓고서는 양식당으로 갔다. 아이의 이름은 로벗이었는데 호텔의 화려함에 고함을 지르며 카펫위를 굴러 다녔다. 우리는 그 아이의 재롱에 웃으며 어색함을 달랬다. 자리에 앉아 음료수와 음식을 주문했다. 내가 그 호텔의 스테이크가 맛있다고 하면서 그것으로 통일하자고 하니까 모두들 불만이 없다고 했고 로벗은 만세를 부르는 시늉을 했다. 아이들은 고기를 좋아하나 보다. 난 어려서 누가 고기를 사주지 않아서 고기를 많이 못 먹는다. 고기도 먹어 본 놈이 먹는다는 유명한 말은 나에게 아주 잘 적용이 된다.
음료수를 마시며 디저트도 먹었다. 나의 돈을 쓰는 것은 아니지만 경리가 뭐라고 하면 어쩌나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만약 그러면 현지 수당을 쓰는 수 밖에 없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그들과의 식사를 즐겼다.
식사가 끝나니 에스더의 차를 타고 린다와 아이는 집으로 갔다. 나는 돈만 쓰고 지붕 쳐다보는 개가 되었다. 그런데 린다가 전화하겠다는 시늉을 했기에 방으로 들어가 땀을 씻고 기다렸다. 밀레지아와 같은 열대 지방에서 호텔 객실의 에어컨을 틀면 약간은 축축한 냄새가 난다. 후끈했던 방안이 시간이 지나면 쌀쌀해진다. 목욕을 마치고 나오면 방안의 공기는 이미 충분히 챠져서 쾌적함을 느끼게 된다.
어떤 이들은 냉방병에 걸릴지도 모른다며 에어컨 사용을 자제하지만 나는 별로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다. 추우면 담요를 더 덮고 자더라도 에어컨을 끄지는 않았다. 특히 목욕을 마치고 나왔을 때 이미 차진 방안 공기를 만나면 정말 상쾌한 느낌을 가지게 된다.
침대에 누워서 555를 하나 빼어 물고 불을 부쳤다. 555는 영국 담배여서 한국에서는 구입이 어려운 담배인데 맛이 괜찮아 자주 피웠다. 당시 호텔은 금연실이 거의 없었다. 어느 방에서나 흡연이 가능했고 그래서인지 담배가 해롭다고 느끼지 않았기에 아주 많이 피웠다. 하루에 적어도 한 갑은 피웠고 술을 마시게 되면 더 많이 피웠다.
담배를 침대옆에 협탁위의 재털이에 비벼 끄고 멍하니 천정을 처다보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당시는 휴대폰이 없었기에 유선 전화가 방마다 있었고 그 전화가 울린 것이었다. 수화기를 드니 린다였다. 자신의 아파트까지 와줄 수 있냐고 물었기에 나는 당연히 갈 수 있다고 했다. 호텔에서 택시를 타면 5분 정도 걸리니 10분있다가 밖에서 기다리겠다며 전화를 끊었고 나는 곧 옷을 갈아 입고 방을 나와 택시를 탔다. 말레지아의 화폐는 링깃이었다. 지금은 달라와의 비율이 4대1 정도지만 당시는 2대1 이었다. 택씨비로 2 링깃을 지불하고 내렸다. 축축하고 무더운 공기가 나를 엄습했다. 정말 싫은 날씨였다. 린다는 내가 내리는 것을 보고 뛰어왔다.
"에스제이, 덮지?"
"뭐 말레지아가 그렇지. 왜 오라고 했는데? 호텔은 시원하고 좋은데 말이야."
"나도 알아. 그런데 이곳은 매우 좁아서 아는 사람을 만날 확률이 매우 높아. 호텔같은 곳에서 사람을 혼자 만나면 동네에 소문이 난단 말이야."
"그래서 어쩌자구?"
"여기서 데이트 좀 하자구."
"여기서, 이 밤에?"
"응."
"집에 들어가지 않고?"
"집에 부모님이 계서."
"그럼 부모님과 함께 살아?"
"내가 이혼하고 이 집에 들어온거야."
"참 답답하게 됐네. 어디로 갈까?"
"뭐 딱히 갈 데는 없어. 여기 저기 걷지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