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체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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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체험

 

난 좀 앓았다. 심한 것은 아니고 열이 좀 나고, 몸살이 난 것처럼 온몸이 쑤셨다. 오후에 일어나서 편의점으로 갔다.

일상의 일이 된 것처럼, 깨면 일어나서 편의점에 갔다가 편의점 일을 마치면 책대여점에 가고 하는 것이 습관처럼 자연스러웠지만,
냉장고에 들어가서 물건을 정리하면서도, 홀에서 F/F-신선식품-의 유통기한을 확인하면서도, 열때문인지 몸이 붕 떠있는 느낌이었다.


"정희야, 이따가 호재 오면, 여기 내가 1번 포스에 내가 만원 넣어 두고 갈테니까, 삼계탕이라도 하나 시켜먹으라고 해... 매일 밤 새는데 컵라면에 삼각김밥만 먹이려니까 마음에 찔리네.."

"와..사장님 너무 하시는 거 아니에요..."

"또, 왜....넌 무슨 그런 불만이 그렇게 많냐..전생에 레지스탕스였냐?"

"아니. 어제 책대여점 식구들이랑 킹크랩 먹었다면서요...딴 사람은 몰라도...나도 근무 끝난 시간이었는데, 불러주면 좋았잖아요...그리고 편의점이랑 대여점이랑 너무 차별대우 하시는 거 아니에요...우린 회식이라고 해봤자..삼겹살 사주시더니..."

"걔네는 처음이자 거의 마지막 회식이라 그런거지...니네는 내가 자주 작은 거라도 사주잖아...."

"그럼, 호재랑 저랑은 왜 차별대우 하세요?"


"호재는 아침에 내가 오늘 늦을 것 같아서 물건 정리도 시키고 그랬으니까..그리고 야간 근무는 힘들잖아....넌 주간인데도 내가 호재랑 똑같이 시급도 주잖아..그것만 해도 대단한 거라고..주위 다 따져봐라 야간이랑 주간이랑 같이 주는데가 어디 있다고...
내가 말을 안해서 그렇지....저녁알바가 제일 바쁜데도, 아직 너 보다 시급 덜 받는 거 알지...넌 내 오른팔이라고.."

"맨날 오른팔 타령만 하지말고...좀 대우를 하라구요...나도 삼계탕 한 그릇 사주던가...."

"넌 이자식아 내가 돈주고 가면 또 그걸로 패밀리마트 왕김밥 사먹을 놈이면서...무슨....우리 것도 맛있으니까. 사먹을 거면 우리 걸로 사먹어..!! 넌 내가 시켜줄테니까는 지금 먹을래?"

"됐어요. 엎드려 절받기....그렇게만 해요....나도 우리 직원들 다 동원해서 파업을 하던지 노조를 만들던지 할테니까...."

"알았다 알았어...알아 모실테니까 오늘 하루만 좀 봐줘라...머리가 띵하다고....니 목소리가 온통 울린다 야..."


역시 회식의 효과는 컸다.

안그래도 바지런한 성격의 희선이는 정말로 가게를 빤짝빤짝하게 닦아 놓았다. 그런 녀석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좀 더 잘해줘야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오...사장님 오셨어요..."

"그래, 왔다. 넌 뭘 좋은 이야기라고 회식한 걸 정희에게 이야기 해서는..."

"정희가 뭐라 그래요..."

"그래, 내내 당하다가 왔다. 아이고 머리야..지끈지끈하네...야, 가게 엄청 깨끗하다...고맙다....그래도 너밖에 없다..진짜.."

"방금 정희에게도 너밖에 없다..그러고 왔죠?"

"어..어떻게 알았냐...."


"뭐, 사장님은 알기가 쉬운 사람이니까요..."

"어젠 잘 들어갔냐..?"

"예, 왜 그러신데요.."

"아니, 처녀애들 그냥 택시에 태워보내는게 좀 불안해서..내가 술만 안 먹었으면 다들 데려다 주는건데...좀 걱정이 되더라고"

"뭘 그러세요...근데 진짜 대단하긴 대단하세요..어제 3시까지 근무하셨던데요..."

"그럼, 가게 열기로 했으면 약속은 지켜야지..."

"안 피곤해요..."


"안그래도 몸살 날 것 같다 야...참 독촉 문자좀 보내"

"아까 전에 한 번 보냈는데요.."

"이틀 연체하면 한 번 보내고 사흘 연체하면 두번 보내고 저번달에 SMS요금 나온 것 보니까 별로 안나왔더라고..너랑 나랑 열심히 좀 뛰어야지 우리 가게에 누가 있냐.."

"몸도 안좋아 보이시는데 오늘은 좀 일찍 들어가서 쉬세요...힘이 하나도 없어 보이네...참 사장님은 밥은 누가 해줘서 먹어요...혼자 살잖아요...?"

"그냥 내가 해먹지...보통은 아침은 안먹고 점심은 편의점에서 먹고, 저녁은 사람들 만나고 하니까 매번 해먹지는 않지..왜?"

"반찬이라도 좀 해드릴까 해서 그렇지요...먹고 싶은 거 있으면 재료비만 주세요... 저 이번에 한식조리사 시험 치는 거 아시죠?"

"참 필기는 붙었다면서...실기는 언제냐?"


" 9월이요..."

"그럼 따고나면 우리랑도 빠이빠이냐?"

"모르죠...요즘 자격증 있다고 바로 취업되는 것도 아니고...뭐, 잘하세요....나처럼 고급인력 구하기가 쉬운 줄 아세요"

"정희랑 너랑 짰냐. 완전 판박이네 판박이..."


속이 좀 울렁거렸다. 하긴 강행군을 했으니까...거울을 봤더니 눈이 퀭하니 들어가 있었다.

뭘 좀 먹긴 먹어야 하는데....혼자서 밥을 먹는 건 이젠 익숙할 때도 되었는데, 아직도 난 식당에서 혼자서 밥을 먹는 것이 익숙하지 않았다.

유경이에게 전화를 건 것은 그냥 혼자서 밥을 먹기 싫어서였다.


"저녁 먹었니?"

"아니요, 근데 왜요?"

"시간 있으면 밥 같이 안 먹을래..혼자 뭘 먹기가 싫어서.."

"죄송한데, 오늘은 약속이 좀 있어서요.."

"그래...그럼 맛있게 잘 먹고.."


대여점에서 가져온 새로 들어온 무협지 한권을 옆에 끼고서는 중국집으로 들어갔다.

짜장면 보통을 하나 시켰다.

작년까지만 해도 늘 곱배기를 먹었었는데, 올해 들어오면서는 밀가루 음식을 많이 먹지 못하게 되었다.

짜장면 곱배기를 먹을 수 없다는 것은 꽤나 날 낙담시켰다.

몇년 째 똑같은 음악이 저장되어 있는 엠피쓰리에서 제이의 어제처럼을 들으면서 짜장면이 나오는 것을 기다리고 있었다.

무협지는 아주 가벼웠다.

비장감과 의협이 살아숨쉬는 장중함이 무협지가 가지는 전부의 매력은 아니다. 난 오히려 코믹한 설정을 더 즐기는 편이다.

하지만, 너무 심한 것이 일권의 반도 지나지 않아서 천하제일고수가 되다니 아무리 믿을 수 없는 걸 믿음으로써 재미를 추구하는 무협이라고 해도 너무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의 모든 일인자들은 그 놀라운 기술을 보유하기 위해 일정한 시간이상의 숙련기간을 반드시 필요로 한다. 대부분이 천재인 일인자들에게는 그 넘치는 재능을 온전히 자기 것으로 소화하기 위해서 놀랄만큼 많은 노력을 하기 마련이다.


"틀려먹었어...이건 반납해야지"


나온 짜장면을 비벼서 한입을 베어무는데, 무심한 내 눈길에 멀리 유경이가 보였다.

그녀는 한 남자와 팔짱을 끼고 있었다.

한 마흔살 정도 되어보이는 그 남자는 도저히 친척이나 가족으로 보이지 않았다.

이상하게 마음을 별로 주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불같이 질투심이 피어올랐다.

욕을 퍼붓다.

몹시 분했다.

배신감이 들었다. 유경이가 나만 만나야 한다는 것은 아니었지만, 웬지 분한 생각이 들었다.

먹던 짜장면을 그대로 둔 채로, 돈을 치르고 밖으로 나왔다.

그래서는 안되는 거였지만, 난 뒤를 밟았다.

둘은 매우 다정했다. 뒤따라가던 내가 봐도 정상적인 아닌 사이의 남녀가 그렇게 다정하니 눈살이 찌푸려졌다.

지나는데, 혀를 차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들은 곧 헤어졌다.

가만히 보니까 유경이가 우리 가게에 출근해야하는 시간이었다.

어제 나와 나눴던 정사는 아무것도 아니었나...

나는 나름대로 마음을 써줬는데, 부족했나..저런식으로 살거면 왜 짠 알바비를 받으면서 알바를 하는걸까..

가끔 한 사람씩을 만나는 편이 훨씬 더 돈이 될텐데...

씁쓸한 마음에 가게에 들리지 않고 집으로 돌아와 비디오를 봤다.

우울한 기분이 들때면 난 로맨틱 코미디를 본다.

저번에 중고비디오를 파는 가게에서 사와서 아직 보지 않는 케이트 & 레오폴드를 봤다. 진짜 귀족이었던 남자가 현대 뉴욕에 와서 사랑에 빠진다는 이야기였다.

판타지를 좋아하는 나지만, 도무지 영화볼 기분이 나질 않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좀 그랬다.

내가 그녀를 구속할 수는 없는 일인데, 유경이가 누구랑 어떤 일을 한다고 해도 나랑은 상관이 없는 일인데..

한 번 잤다고 해도 그게 뭐 나랑 사귀기로 한 것도 아니고, 내가 간섭할 수 없는 일인데....나도 사내새끼라고....

뺏기기 싫은 건가...

물론, 나는 이성적인 사람이라, 항상 모든 일을 객관적으로 생각하려고 노력하지만, 사람이란 정답을 알고서도 틀린 답을 택할 때가 있다.

이성적으로는 유경이가 그 남자와 나를 동시에 만나는 것은 이해할 수 있는 문제였지만, 심정적으로는 어떻게 그럴수가 가 계속해서 터져 나오는 것이다.

샤워를 하고 잠을 자려는데 비가 오기 시작했다.

꿉꿉한 기분이 좀 씼어지는 것 같았다. 갑자기 아까 유경이가 우산을 들고 있지 않았는데 라는 생각이 들었다.

바보같은 놈!!!

난 왜 이렇게 늘 우유부단하고 정에 약할까...

가게로 전화를 해보고 우산을 가져다 줄까... 걸어가기엔 꽤 멀던데..

하긴 내 가게가 대여점만 있는 것은 아니지...

호태에게 전화를 걸었더니 밝은 성격의 호태는 비와서 손님이 많다면서 바쁘다면서 자기가 이따가 걸겠다고 하고 끊어버렸다.

이자식이 사장님이 전화를 했는데...

하긴, 장사가 잘된다니 기분이 좀 풀리긴 풀렸다.

비가오는 날은 장사가 잘된다.

에이...아무래도 마음에 걸린다.

시계를 봤더니 11시를 지나고 있었다.

기다려볼까..여름 소나기인데... 기다리면 그치지 않을까...

빗소리를 들으면서 방을 청소했다. 웬지 먼지가 쌓이는 기분이다.

청소를 하고 땀이 좀 나서 다시 샤워를 하려다가 물에 몸을 좀 담그고 싶어졌다.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고 몸을 풀고 싶었다.

몸이 으슬으슬 하니 추워졌기 때문이다.

찜질방을 찾았다. 가기전에 대여점을 들러볼까 하다가 유경이의 얼굴을 보게 되면 어떻게든 아까 저녁때의 일을 이야기할 것같아 내 옹졸한 모습을 보이기가 싫어서, 편의점의 들렸다.

손님이 많아 바쁘다더니 들어갔더니 호재는 삼계탕을 먹으라고 준 돈으로 치킨을 먹고 있었다.


"짜식이... 삼계탕 먹으라니까. 그거가지고 몸보신이 되냐?"

"형님도....그놈이 그놈이지 같은 닭이잖아요...하여튼 고맙습니다. 안그래도 어제 새로 광고지가 와서 닭이 좀 먹고 싶었거든요."

"스포츠 2.0 누가 안 사갔지?"

"예...읽으시게요.."

"어 찜질방이나 가려고...몸이 찌쁘드드해서 한증막에 좀 들어가 있으려고..."

"여기요, 2000원이요..."

"아니야, 나 이거 이따가 반납할꺼야."


찜질방에서 찜질을 하고 식혜랑 맥반석 계란을 사먹고 가져간 스포츠2.0을 다 읽고 마무리로 사뿐하게 뜨거운 물 목욕을 하고 났더니 시간이 두시가 다 되어 있었다.

찜질방에서 잘까하다가 아무래도 여러사람이랑 같은 공간에서 누워있는게 우스워 보여서 집으로 돌아왔다.

양치질을 하고 잠에 들었다.

난 잠귀가 밝은 편이라 잠결에 디지털 도어록이 열리는 소리를  듣고 잠에서 깼다. 이시간에 올 사람이 없는데....

일어나 보니 유경이었다.

유경이는 비에 쫄딱 젖어서 젖은 흰색 티 아래에 분홍색 속옷이 움직일 때마다 언듯언듯 비쳐보였다.


"아, 일어났네요....아...머리 봐..완전 새집이네요..안일어나면 깨우려고 했었어요...번개도 치고 무서워서....혼자 못자겠더라구요..사장님, 저 수건 좀 주세요...근데, 왜 이렇게 깨끗해요..와....먼지가 한 톨이 없네요..."


그 순간까지도 난 저녁의 그 남자가 어떤 사람인지를 계속 물을까 말까를 계속 고민하고 있었다.

일단 비맞고 온 꼴이 맘에 걸려서. 들어가서 샤워를 하라고 하고선 원룸 아래에 있는 편의점에 속옷을 사러 갔다 왔다.

젖은 걸 그대로 입힐 수는 없으니까....

씻고 나온 녀석은 그야말로 발랄했다.

저 천진한 미소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속았을까를 생각하니 화가 울컥 치밀었다.

이러면 안돼, 이러면 안돼 마인드 컨트롤을 계속해서 시도했지만, 웬지 속았다는 느낌을 떨칠 수가 없었다.

내가 쓰는 바디클린저 냄새를 맨살에서 풍기면서 밖으로 나온 유경이는 내가 사놓은 속옷을 발견하고는 좋아하더니 사장님, 디자인이 영 별로인데요라는 농담을 내게 던졌지만, 난 농담을 받아줄만한 정신적 여유가 없었다.

그저 어떻게 하면 자연스럽게 그 남자에 대해 물어볼까 하는 생각뿐이었다.


"사장님, 먹을 것 뭐 없어요..배고픈데..비맞고 왔더니 춥기도 하고."

"잠깐만 기다려 봐..."


나는 편의점에 샘플로 들어온 머크컵에 타마시는 스프를 한잔 타서 가져다 주고...슬쩍 호태를 팔아 물어봤다.


"아까, 호태가 저녁먹으러 갔다가 너 봤다고 하더라...어떤 아저씨랑 되게 다정하게 걸어가는 걸 봤다던데..혹시 아빠니?"

"아니요, 그냥 20만원짜리 남자라고 해야하나...."


급격히 기분이 나빠졌다. 그럼 난 10만원짜리 남자인가...


"근데, 왜요? 혹시 방금 그거 기분 나빴어요? 뭘 그래요..그냥 알바인데...애인대행 알바한거에요..."

"아니, 그냥 그 사람은 20만원짜리, 난 10만원짜리인가 해서.."

"혹시, 사장님도, 어제 나랑 잤으니까, 이제 내가 사장님꺼라거나 그렇게 생각하는 건 아니죠?"

"왜, 그런 욕심 내면 안되니...나도 남자인데...."

"흥, 남자들은 다 똑같네요...아마 그 20만원짜리 남자도 지금 사장님이랑 이러고 있는 걸 보면 기분나쁘겠죠....뭐...난 그런 여자에요...왜 싫으세요...싫지만, 내가 한 번 해준다면 또 그건 하겠죠...사장님도 그런 남자에요..."


부정을 하고 싶었다. 난 그런 남자가 아니라고...

하지만, 그녀가 다가와서 속옷을 벗어던지고 알몸을 보이는 순간 알몸으로 다가와 내 트레이닝 바지를 벗기고 심벌을 움켜쥐고 빨기 시작했을 때 난 그녀를 밀쳐내지도 제지하지도 못했다.

"그래요, 난 더러운 년이에요...욕을 해 주세요...."

"무슨 말이야..."

"욕을 해달라구요...더러운 년이라고...걸레같은 년이라고..어서요"

"더러운 년!!"

"더 크게요..빨리....이 개같은 새끼야. 내가 빨아주니까 좋아 죽겠지...빨리...더 크게 욕을 해보라고....이 새끼야..."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난 평생 해본적도 없는 욕을 퍼부으면서 유경이의 작은 입에 내 걸 쳐넣기 시작했다.


인간의 굴레.


젖어있는 머리카락에서떨어진 물이 발등에 떨어졌다.

정신이 좀 들었다. 츄릎츄릎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속에서 열기가 피어올랐다. 머리카락 사이로 보이는 피부가 너무 하애서 도무지 사람같지가 않았다.

여전히 내 자지는 유경이의 입술속을 들락날락 하고 있었다.

입안 피부는 촉촉했고, 윗니가 음경의 피부를 긁을 때마다 아프면서도 시워했고, 혀끝이 귀두의 테두리를 슬쩍슬쩍 건드릴때면 번뜩하고 머리칼이 곤두섰다.

그 때였다.


"아 씨발, 욕을 하라고...이 더러운 창녀야라고 말을 하라고..."


그 순간 마음이 급격하게 마음이 식어버렸다.

난 뭐랄까 좀 착한아이 컴플렉스가 있는 편이다.

그래서 늘 남의 눈치를 보기를 좋아하고, 영화도 총과 피, 욕이 나오는 것은 보지 않으며, 예의를 차리기를 스스로에게 강요하고, 결정을 내릴 땐 우유부단하다.

그런 나를 바꿔보려고 노력한 적도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삶에 있어 내 스스로에게 좀 답답한 적은 있었지만, 내 착한아이 컴플렉스는 나름 이웃이나 주변에게 언제나 좋은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는 바탕이 되어 주었기 때문이다.

스스로에게 대단히 도덕적인 사람이라는 평가를 내릴 순 없었지만, 거침없이 욕설을 내뱉는 저 스무살의 조그맣고 예쁜 입안에 내 무식한 자지를 들이밀고 있는 내가 바로 그 얌전떠는 내가 맞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난 무척 스스로가 혐오스러웠다.

욕찌기는 물론이고 구토가 나올 것 같았다.


아무짝에도 쓸데가 없는 인륜, 인간의 도리가 내 일탈의 발목을 잡아챘던 것이다.

죽어버린 내 성기를 입에 물고 있던 유경이는 갑자기 힘이 빠져서 이젠 그저 살덩어리에 불과해진 내 성기를 입에서 떼어내더니 나를 보며 물었다.


"도대체 왜 그래요? 조루에요? 싸지도 않았잖아요. 저번엔 잘하더니 왜 그래요?"


위로 올려다보며 좁은 이마를 찡그리는 그녀의 얼굴은 매우 예뻤다.

나는 알몸의 그녀를 일으키며서 침대의 가장자리에 앉혔다.


"좀 앉자"


그리고 나 역시 옷을 수습하고는 책상에서 의자를 빼서 그녀의 앞에 앉았다.

방안은 흥분으로 가득차서 공기가 뜨겁게 느껴졌다.

창문을 열었다. 찬바람이 확하고 들어와서 상기된 내 얼굴의 열기를 식혔고, 유경이는 모두 벗고 있어서 그런지 팔에 소름이 돋아나는게 보였다.


"아 추워요. 나 들어갈래요"하고 침대로 쏙 들어가 버렸다.


누워있는 유경이는 역시 예뻤다.

하늘색 내 베게가 너무 커서 유경이가 더 작아보였다.

나는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면서 말했다.


"그냥, 그랬어...도무지 좀 니가 이해가 되지 않아서. 니가 욕을 막 퍼붓는 것도 그랬고, 네게 펠라치오를 시켜놓고서 잔뜩 흥분한 내 자신도 이상하고 이해가 가지 않아서, 그런 상황이 납득이 안되더라 처음엔 몰랐는데, 니가 스스로를 더러운 창녀라고 말하라는 소리를 듣고 번뜩 정신이 깼어. 넌 그렇지도 않고, 그건 도리도 아니잖아 너 왜그랬니?"

"아...좀 신선하네요... 이런 반응은 처음이라...남자들은 백이면 백 다 넘어가던데....사장님도 그런 것 같더니... 사장님과 내가 섹스를 했다고 해도 난 전혀 실망하지 않았을텐데.. 좀 이런 반응은 의외라서... 좀 당황스럽기도 하고 그렇네요.. 이런 말을 하면 훨씬 더 흥분해서 이성의 끈을 끊으면서 섹스에 집중할 수가 있거든요. 아...도리라니...하하....좀..."


하긴 유경이가 저렇게 웃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도리를 찾기에 난 좀 무리한 행동을 했으니까. 솔직히 2분전까지만 해도 자기 입에 성기를 쳐박고 있던 남자가 도리를 찾느다면 얼마나 쌩뚱맞겠는가.

나 스스로의 바보같음에 절망하고 있는데, 유경이가 내 손을 잡아 끌더니 자기 이마에 내 손을 가져다댔다.


"사장님, 열이 있나요?"


그러고보니 유경이의 이마와 머리끝사이에 난 솜털에는 송글송글 땀이 맺혀있었다. 열이 좀 있는 것 같기도 했다. 난 손발이 유난히 열이 많은 편이라 내가 머리를 만져본다고 해도 난 항상 시원함을 느끼는 편인데, 머리에 조금 열이 있는지 따스하게 느껴졌다.


"그런 것 같기도 하고...아까 비맞은 것 때문에 그러니?"

"사장님 이제 우린 역할극을 하는 거에요.."

"역할극 그게 무슨 소리야..."

"사장님은 유난히 생각이 많은 사람이라 즐거움을 즐기는데 익숙하지 못해요. 진정한 즐거움을 얻으려면 이성보단 본능이 필요한 법이에요. 내가 알려줄게요...단숨에 끊어버리는거에요.. 난 지금부터 감기 때문에 아픈 사장님의 동생이에요. 사장님은 아픈 동생을 병간호하려고 왔다가 아픈 동생을 보고 흥분해서 동생을 강간하는 오빠역이에요...지금부터 시작하는거에요"


너무 충격적이어서, 아무 말도 못했다.

더구나 여동생이 없는 사람이라면 모를까. 난 실제로 여동생도 있는 사람이라 이런 설정은 견디기 힘들었다.
난 잠시의 고민도 없이 누워있는 유경이를 일으켜서 사온 속옷과 옷장을 뒤져 반팔티와 반바지를 입히고서는 유경이가 벗어놓은 옷을 세탁기에 넣고 돌렸다.


"쓸데없는 짓 하지마, 비도 맞았는데, 푹 자라. 피곤하지도 앉냐..."


푸핫 하고 유경이가 웃더니,


"오빠, 동생이 이렇게 아픈데, 간호도 안해주는거야? 너무한 거 아니야..."하고 나를 놀리더니 이내 조용해진 것이 보니까 지쳐서 잠들어있었다.


이불을 덮어주고는 난 베개만 꺼내서 바닥에서 잠을 잤다.

다시 잠에서 깼을 때는 8시 반이 좀 지나있었다.

비가 오는 꿉꿉한 날씨 탓인지 세탁기에서 꺼내 널어놓은 옷들은 마르지 않았다.

자는 유경이를 봤는데, 이 녀석은 역시 자는 모습이 예뻤다.

어제 밤의 일들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미소를 지으면서 자고 있는 유경이를 두고 피씨를 켰다.

세상의 사건사고가 별로 궁금하진 않지만, 난 언젠가부터 습관적으로 네이버를 들어가서 무슨 일이 있었나를 보는 아침습관이 생겼다.

편의점을 하고나서는 편의점에서 신문을 보는 일에 익숙해져서 신문을 신청하지 않으면서부터 생긴 습관이다.

네이버 뉴스를 좀 보고 연패중인 기아타이거즈 홈피에 들러서 욕을 좀 해준다음, 싸이에 접속했다.

쪽지가 와 있었다.

미연이였다. 한 번 보잔다. 저번에 누군가를 데리고 온다고 했는데..

설마...쓰리썸인가...내심 기대도 있었다.

싸이를 켜면서, 자연스럽게 배경음악이 나왔다.

배경음악 때문인지 유경이가 뒤척거리다가 깼다.


"어머, 오빠, 깼어? 무심하네...동생은 아픈데...말이야...거들떠 보지도 않고, 싸이나 하고..."


나른한 목소리로 말하는 유경이는 냉장고에서 막 꺼내서 씼어놓은 양상추처럼 싱그러웠다.

갑자기 그 나른한 목소리를 듣고 있자니 언제 시작된 건지도 모르게 아침발기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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